책소개
무지개처럼 찬란히 나타나 스물아홉에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 반어적 어조와 토착적 유머로 깊은 비애의 잔혹한 즐거움을 그려내다 김유정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며 마름 밑에서 소작논을 부치는 머슴이나 소작인들이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의식적이건 심층적이건 자기 통일화의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는 주변인적 반응으로 점철되어 있다. 순박하고 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무지하고 티 없는 사람들( 봄봄 산골 ) 굶기를 밥 먹듯 하는 가난 때문에 좌절과 절망을 곱씹는 사람들( 가을 안해 ) ‘농사는 열심히 하는 것 가운데 알고 보면 남는 건 남의 빚’ 때문에 농촌을 등져야 한다고 몸부림하면서도 그곳에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소낙비 만무방 산골 나그네 )일 수밖에 없었다. 굶주림을 면키 위해 아내의 몸을 지주에게 파는 남편의 행위 또한 주변인적 반응의 연장으로 파악된다. 만무방 의 ‘기호’는 아내를 팔아 그 돈으로 노름을 하고 소낙비 의 ‘춘호’는 노름 밑천 2원을 장만키 위해 아내의 매춘을 강요한다. 그러면서도 아내나 남편이 다 같이 아무런 윤리적 수치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아내를 회사에 첫 출근이나 시키듯이 엄숙성조차 지니고 있다. 1930년대 한국 농민의 비참한 삶의 양태를 보여 주면서 작가 김유정은 울분하지도 않고 오열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소설은 당시 참혹한 현실과 수탈당한 농민의 자포자기적인 생존 양식을 독자로 하여금 부단히 상기시켜준다.
저자소개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으며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35년「소낙비」가 『조선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가작 입선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5년에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대표작으로는『금따는 콩밭』,『봄봄』,『따라지』,『두꺼비』,『동백꽃』,『땡볕』등이 있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회화적인 해학의 오목거울을 통해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데 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등,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약 2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경춘선 철도에는 김유정 역이 있기도 하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동백꽃』이 출간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적으로 남아있다.